다도, 이미지로 마시다.
다도, 이미지로 마시다.
  • 이창숙
  • 승인 2018.05.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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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29>
홍현주가 초의에게 써준 친필 시고이다. 『청량산방시축』
 차(茶)는 매개체이다. 도(道) 역시 일정한 틀이 있어 정해진 것이 아니니 이 모두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다. 구태여 다도(茶道)라는 실체를 만든다면 이미 다도와는 멀어질 것이다.

 우리는 차를 통해 많은 이와 관계를 맺는다. 때론 차를 마시며 자신에게 조용히 숨 돌리기를 청하기도 한다. 지금은 차가 학문이 되어 많은 이들의 연구대상이 되었지만, 차는 마음 챙기기에 좋은 친구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가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은 다도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방법을 다도로 발전시킨 것은 당나라 때 육우(733~804)이다. 그는 『다경』을 저술하면서 차에 정신을 불어넣어 다도라 하였다. 다도를 정행검덕(精行儉德)이라 하였다. 이렇듯 차는 오래전부터 다도로 이미지화 되었다.

 한국의 다도는 어떠한가. 조선 후기 정조의 사위 홍현주(1793~1865)의 다도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이에 대한 답으로 승려인 초의(1786~1866)가 『동다송』을 지어 올리면서 한국 다도의 근거를 마련한다. 초의는 다도에 대해 “찻잎을 딸 때는 오묘함을 다해야 하고,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물은 진수를 얻어야 하고 차를 우릴 때는 물과 차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차의 진실함과 정기가 서로 어우러진다, 이래야 다도가 지극하다”고 하였다. 찻잎 채취에서 차를 만들고 마시기까지 모든 과정을 다도라 하였다. 어느 한 가지만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았다. 참으로 포괄적이다. 그는 차를 직접 만들고 마셨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도에 대해 궁금했던 홍현주는 초의가 올린 『동다송』에 만족했을까. 기록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그는 차를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초의를 좋아했으니 그냥 그렇다 했을 것이다.

 홍현주는 정조의 딸 숙선옹주와 혼인을 했다. 부마로 관직에 나갈 수도 없고 정치행위도 할 수가 없었다. 학문에 열중했으며 서적과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 문인들과 서찰을 통해 교유했다. 이미 중국의 차문화에 익숙해 있었다. 차와 관련된 시도 수 십편이 된다. 숙선옹주와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그보다 30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부마는 재혼도 첩도 둘 수 없는 처지라 혼자서 외롭게 시·서화를 즐기며 평생을 보낸다. 초의와의 만남은 다산의 아들 유산의 주선으로 젊은 나이에 수종사에서 이뤄졌다. 그 후 초의는 홍현주를 해거도인(海居道人)라 불렀으며 완호선사의 비명을 부탁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다. 당시 승려는 도성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하지만 초의는 해거의 도움으로 출입이 가능했다. 초의는 직접 만든차를 해거에게 선물했다. 시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어느 날 초의가 상경한다는 소식을 듣고 청량사의 산방에서 시회를 열기로 한다. 가마를 타고 먼저 도착한 해거가 초의를 기다리면서 지은 시가 있다.

 “좋은 만남은 정한 인연이 있어야 하네, 더디고 빠른 것은 분수 밖일세.

  버들은 원교에 늘어서 있고, 풀은 묵은 밭에서 싹이 올라오네.

  가마 타고 성 동쪽 밖으로 나와, 한 참가서 솔숲으로 들어왔다네.

  솔 사이를 지나도 솔밭뿐인데, 말쑥한 암자가 서 있다.

  사람을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고, 하늘가로 백로만 날아오른다.”

 초의의 만남에 대한 홍현주의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시이다. 늦게 도착한 초의도 따뜻한 마음에 감격하여 화답시를 지었다. 다도를 말할 때 초의 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분을 초월한 홍현주의 마음챙김이 있어 한국 다도가 탄생 된 것이라면 지나친 상상일까.

 현대에 이르러 다도의 실체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금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기심에서 오는 마음을 뒤로하고 숨 돌리기를 한다면 홍현주가 초의를 기다리는 마음과 초의의 다도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마음 챙김은 과거의 일을 곱씹거나 미래의 일을 걱정하지 않고, 현재의 순간에 머물도록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삶은 마음이 만들고 마음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한 대로 삶이 만들어진다고 하니 생각을 다루는 습관을 길러보면 어떨까.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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