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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그날의 함성을 말하다.

기사승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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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당시 전북대학교 79학번인 최백렬 교수(전북대학교 무역학과)는 지난 겨울 서재에 잠들어 있던 민주화 운동의 오랜 역사적 서류를 깨웠다.

 당시 전북대학교 영어 학술동아리인 ‘프론티어’ 써클의 회장으로 취임한 대학교 2학년 최백렬은 2월 22일 써클연합회에 가입하게 된다.

 전북대 민주화운동은 첫 학생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김희수(당시 상과대학 경영학과) 총학생회장과 이광철(당시 문리대 철학과) 학생, 고 김형근(당시 사범대) 학생이 선봉에 서 이끌었다.

 아침마다 제1학생회관에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동참을 호소한 끝에 그해 5월 2일 전국 최초로 전북대 학생들의 첫 가두 투쟁이 시작됐다.

 수많은 학생들은 전북대 구정문을 시작으로 완산경찰서 앞까지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고 다쳐 아수라장이 됐다.

 1980년 5월 18일 오후 전주 오거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 가두 투쟁을 벌였다.

 전주역 광장(현, 전주시청 광장)은 장갑차 두 대와 대검을 장착한 총을 든 군인들로 가득했다.

 그러자 군중 속 누군가가 “미원탑! 미원탑!”을 외치기 시작했고 최교수가 당시 전북대학교 농성장에서 봤던 몇몇 학생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뛰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최백렬등 10여명의 학생은 5월 24일 새벽 전단지(일명 삐라)를 3장을 작성해 3천부를 전주 시내 곳곳에 배포했다.

 전단지의 내용은 24일 오후 3시 전주 오거리에 모여 전면적인 시민 투쟁을 도모하는 호소문이였다.

 그러나 이날 가두 투쟁을 위해 도착한 오거리에선 수많은 학생들이 체포됐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최교수도 경찰을 피해 도망을 다녔고 집에 경찰이 찾아와 최교수의 신상을 알아갔다는 소식도 듣게 된다.

 한 달여간 경찰과 군인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던 최교수는 가족들의 성황에 못 이겨 1980년 6월 23일 무렵 자수를 하게 된다.

 

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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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영 기자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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